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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 유대현 알럼나이 후원자/멘토 인터뷰

By 2024-07-30No Comments

Inside Jump, 점프의 진심담은 이야기, 사람을 만납니다.

 


 

 

점프 익명의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점프 장학샘(2기)-멘토-후원자라는, 스포츠계로 치면 트리플크라운(한 선수가 의미 있는 3개의 기록을 달성)의 대상입니다. 우리 안에서는 그 이름 잘 아는데, 유독 밖으로 나가는 후원, 후원 명에서는 익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동안 익명을 요청한 이유가 있나요?

“밖으로 내세울 만한 큰일이 아닌데다, 나만 알고 있어도 되는 일이니까요”.

 

이번 인터뷰에 이름을 걸고 응해주신 이유는요? 물론 잠시 고민하셨지만…

“우리는 타인의 어떤 모습에 동기부여가 되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요. 그 의미 있는 문장 안에 제 이름이 담겨도 될 것 같았습니다”.

 

나만 돌보기도 힘든 시대라는데,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제가 감동했던 씨돌 어른의 말을 여기 옮깁니다. 함께 살아가는 일은 특별한 게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요”.

 

 

‘씨돌’은 2019년 SBS 스페셜에 나와 감명을 줬던 어른이었습니다. 정확한 프로그램명은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입니다. 용현은 본명, 요한은 세례명, 씨돌은 자연인의 삶에서 얻은 이름인데, 그 세 개 이름과 삶을 관찰하고 추적한 제작팀은 ‘함께 산다는 것’에 관해 이런 생각거리를 던졌습니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남을 위해서 살면 바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그는 왜 이렇게까지 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 것일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에서 형용사 ‘당연하다’는 우리 삶에서 늘 상수(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값을 가지는 수)이길 바라는데, 왜 자꾸 당연하지 않은 일이 늘어나고, 그 변수 안에서 왜 누군가만 울고 분노하고 지치는 걸까요. 타인을 생각하는 삶이 특별한 게 아니고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정기 후원자이면서 때에 따라 별도 금액을 후원하는 특별후원자의 이름은 유대현, 91년생입니다. 세상 모두가 가진 이름이 그렇듯,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이름의 하나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년 발간) 시즌에 장학샘 활동을 한 ‘아프니까 청춘’이면서, 삼포세대(연애와 결혼, 아이 갖는 것을 포기한 세대)이고, 오포(삼포+인간관계, 내집마련 포기), 칠포(오포+꿈, 희망마저 포기)를 지나, N포(N가지의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까지. 포기라는 말을 꺼낸 건 어쩌면 어른과 사회일 텐데, 그 반대편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다음 세대가 있습니다.

 

7월 24일 오후 5시, 외부 출장을 마치고 점프 성수동 그리드 사무실에 들른 그는 폴로 티에 면바지 차림입니다. 그 캐주얼한 모습에는, 지난 20대 장학샘의 순수함과 수줍음, 지금 30대 창업가(의약품 유통 판매사 공동 대표)의 분주함과 열정이 교차했습니다. 여전히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게 쑥스럽다고 말해서, 그러면 최대한 작은 글씨로 내보내겠다는 농담을 건넸습니다만. 이름의 크기가 1이든 100이든, 늘 움츠린 누군가의 문을 열어준 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세상의 많은, 드러나지 않은 이름들이 있어서입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소중한 이름들

 

점프는 오랜만에 방문하셨어요. 2020년 사회인 멘토 신청하면서 들르셨던 것 같고. 자주 얼굴 보면 좋은데요
장학샘 활동할 때는 성수동 오래된 건물의 작은 사무실이었는데, 지금 점프는 너무 커졌네요😄 그 때 작은 일터에서 진심으로 일하던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때 그 작은 사무실이 여기서 가까워요. 당시 세 들어 일하던 그곳은 지금은 훌쩍 임대료가 뛰고 재건축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지만, 또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점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 청춘의 삶과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지금 H 점프스쿨이 11기죠? 제가 2기인데, 그때 5기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몇 년만 더 버텨도 좋겠다는 고민을 했던 걸로 알아요, 그 작고 소중한 바람이 훌쩍 자라 현재에 이르고 있네요. 점프가 자라는 만큼 나도 더 성장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잊지 않았어요. 점프가 곁에 있어서 저도 이만큼 잘 크고 있습니다.

 

 

 

점프가 후원자님을 자라게 했다는 말씀, 너무 감사한데, 어쩌면 인간은 혼자 자라는 거 아닌가요?
혼자의 성장이 있지만, 함께하는 성장을 더 크게 생각합니다. 장학샘 활동할 때 장학금을 받고, 그때 활동했던 2기 멤버들과 좋은 친구들로 계속 만나고 있어요. 각자 영역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고민을 나누고, 서로 하는 일에 도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인가요. 점프를 통해 연결과 선순환의 가치를 배웠으니까, 그 경험과 기억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잊지 않는 거죠.

H-점프스쿨 2기 시절의 유대현 장학샘

우리는 모두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을’ 이름인데요. 유대현님의 지금 하는 일과 소개를 부탁할께요.
의약품을 판매유통하는 회사를 운영 중입니다. 제약회사 영업부에 다니다가 선배의 오래된 창업 권유로 같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2년 전에 처음 창업하면서 5단계 성장 로드맵을 그렸는데, 지금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2~3단계로 성장했습니다. 4~5단계에는 제조공장 인수와 연구소 설립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이 서른 초반의 선택이니 빠른 창업이네요. ‘젊은 창업’을 권하는 쪽인가요?
막상 시작하고 나서 후회를 했어요, 아, 이렇게 괜찮으면 더 빨리 시작할 걸, 그런 후회요😂 시장 상황이 좋았고, 저를 믿어주는 파트너들이 있어서 순항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말엔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나도 퇴사할까, 창업하면 다 잘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착각? 드라마 <미생>에서 명대사를 기억하는데요. “지금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는^^.
저는 준비된 창업에 속합니다. 기존에 쌓아둔 거래처와 인맥이 창업을 많이 응원해줬어요. 평소 제가 다른 분들을 제 일처럼 도와드렸는데, 그게 쌓여서 돌아오는 것 같아요. 남을 돕는 마음에 다른 건 없었어요.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언젠가 그만큼 돌아오겠지, 그런 보상심리였다면 이심전심이 안 됐을 거예요.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자체로 좋았거든요. 이를테면, 칸트의 정언명령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항상 목적으로 대하라는 그 마음의 명령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령, 오랜만에 듣습니다. 항상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령에 굴복(?)하는 사회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그 마음처럼, 의기투합하고 있나요?
사업 시작 초반이라 섣부를 수 있지만, 시작할 때 합류한 동료들이 한 명 퇴사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동료들에게 이런 응원을 해줍니다. 요즘 세상은 한 가지만 잘해서 지속가능할 수 없으니까, 회사 내에서도 개인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가지라고요. 회사는 그에 대한 지원을 하고, 그 결과만큼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가 계속 커야 하니까, 제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이 부분도 오해가 있을 수 있겠네요. 개인 성장이라는 게, 회사 업무와 관련된 전폭 지원을 말하는 거죠? 회사 사정과는 별개의, 오로지 개인 성장을 위한 아무거나는 아닐 테고요🤣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개인, 맞습니다😊

‘젊은 회사’라 남다른 직원 복지, 이런 게 있을까도 궁금합니다.
회사의 성장 사이클과 시대 요구에 맞춰 하나씩 필요한 부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차와 별개로 여름/겨울 휴가를 마련했고, 휴가비를 지원합니다. 최근 기후동행 교통카드가 나왔잖아요. 그 사용분만큼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도 시작했어요. 가능하면 월급은 그대로 가져가면 좋겠다는 게 지금의 복지 마인드입니다. 누가 더 잘 살고 말고 없이, 함께 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멋집니다! 지금까지 회사 운영의 철학을 들으니, ‘더불어 함께’라는 충분한 진심이 느껴집니다. 이런 마인드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철학 얘기를 자주 하면 옛날 사람 같긴 한데😅, 제 삶에 들어온 철학들이 있습니다. 이번엔 맹자의 측은지심인데요. 매일 뉴스만 봐도 지금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있잖아요. 청년 자살율, 노인 빈곤율 등 걱정되는 소식들이 많습니다. 그게 보이는데 나 몰라라, 나 혼자 잘 살 수는 없잖아요. 종종 들르는 재래시장에서 떡볶이 파는 할머니가 계세요. ‘할머니, 연세도 있으시고 일도 힘드실 텐데, 그만 하세요?’ 걱정하면, ‘그렇긴 한데, 이 일 안 하면 자식들한테 손 벌리게 되잖아. 그건 또 불편해’라고 하세요. 우리는 각자 사정을 안고 사니까,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있겠다, 는 그런 다짐을 합니다.

 

 

 

점프와 마음을 나누는 일, 후원이란 단어도 그 맥락이겠네요. 그동안 익명 후원을 요청한 이유가 있나요?
전 성선설을 믿는 쪽입니다. 사람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선할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건 타고난 본성을 잊지 않으려는 거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이니 그걸 알릴 필요는 없고, 그게 좋은 쪽의 행위라면 나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니까요. 제가 선해서가 아니라 누구나처럼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서 그럴 뿐입니다.

 

 

 

성선설의 반대편에서 성악설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성악설파는 왜 그런 걸까요?
원래는 다들 선했을 텐데, 자라면서 갖게 된 욕심 탓이겠죠, 욕심, 욕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좋고 나쁨이 있다면 선한 욕심 쪽을 선택하면 좋겠어요. 내가 잘했으니 다 내 돈이지, 이런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이용 수단으로만 보는 거라 저랑은 정말 안 맞아요. 그래서 늘 성선설을 응원하고자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누군가는 돕고 싶어

 

91년생. 장학샘 활동을 할 무렵인 2010년, 시대상과 맞물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화제였어요. 그때 아픈 청춘이었고, 여전히 <아프니까 청춘>은 유효한 것 같나요?
아픈 건 비단 청춘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누구나 열심히 살지만, 그만큼 힘든 분들이 얼마나 많나요. 최근 뉴스를 봤는데, 비경제활동 인구가 400만을 넘어 계속 늘고 있다네요. 좋은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여전히 누군가에겐 더 아픈 시대인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가, 나부터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자는 마음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생각하며 더 나은 복지를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건 아픈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어른들의 문제가 클 텐데요. 청춘이라는 영역을 아프게 만든 게 답답해요. 아프다, 덜 아프다, 나는 아프지 않다, 이런 구분이나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응원하는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세대로 규정되는데요. 연애, 결혼, 아이, 내집마련 등 경제적인 요소를 넘어 꿈, 희망마저 포기라는 힘든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 세대에겐 경제적으로도 나를 돌보는 게 먼저일 수 있는데요.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 남을 돕겠다는 생각, 후원의 이유는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물론 제 나은 삶에 필요한 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힘들고 불편한 이웃이 있는데, 그런 분들을 숨 쉬게 할 수 있다면 같은 비용이지만 더 의미 있는 쓰임 아닐까요. 그 의미 있는 활동을 제가 직접 못하니까, 자신의 업으로 하는 분들에게 제 마음을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거죠. 제가 직접 뛰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제가 하는 일에서 더 열심히 살고, 그 일부의 몫을 후원의 이름으로 계속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점프에 후원한 총액을 계산해 본 적이 있나요?
제 사업이나 경제활동에 속한 것이라면 계산에 철저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전하는 일, 축의나 조의, 후원 같은 단어에 굳이 그런 계산을 하고 싶진 않네요. 내 작은 마음이 전달됐으니 끝! 제겐 그걸로 소중한 일상입니다.

 

 

 

그런 마음이면, 점프 말고도 후원을 하고 있거나, 생각하는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제가 보이지 않는 곳들을 다 바라볼 수는 없지만. 제 삶에 보이는 사람들, 즉 ‘이러면 너무 힘들잖아’ 그렇게 뜨끔한 마음이 드는 곳을 일부 응원하고 있습니다.

 

 

 

점프가 생각했던 미래는 멘티-청소년이 대학생이 되고, 장학샘은 사회인이 되고, 멘토와 후원자가 되고, 서로 흐르는 시간만큼의 나이가 들고, 그렇게 계속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연결과 지속입니다. 지금 인터뷰가 점프가 꿈꾸던 미래의 하나인데요. 돌아보면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장학샘 활동 당시 만났던 아이를 기억합니다. 유년기에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학대를 당해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였습니다. 사람을 어려워해서 저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활동을 마치고 나면 그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어느 날에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야기하는데, 그때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떤 소중한 기억은 바쁜 일상을 살면서 잊혀지나요? 아니면 어느 시간에 나도 모르게 모습을 드러내나요? 혹은 마음 깊숙이 담겨 다른 따뜻한 모습으로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 아이 한 명의 오롯한 기억이 아니라, 지금 주변에서 만나는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 안에 담긴 것 같습니다. 제 삶이 바쁘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챙기려면 더 열심히 살라는 다짐이 어떤 기억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네요.

 

 

 

여름 장마철이라 이런 질문을 생각해봤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챙기겠지 하며 그냥 지나칠 수 있고, 내 우산을 건넬 수 있고, 아니면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줄 수도 있겠네요. 그 상황이면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음, 저는 제 우산을 건네고, 혹시나 너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쑥스러워서 냅다 뒤돌아 제 갈 길을 뛰어갈 것 같습니다🤣

 

 

 

오래되고 소중한 인연을 빌려 아이디어를 하나 구하겠습니다. 이번에 브라이언 임팩트와 함께 1:1 매칭 모금 프로젝트가 열리는데요. 1을 후원 하면 거기 1을 더해주는, 기쁨 두 배 캠페인이랄까요. 후원하시는 분은 1로 2를 만드니 두 배의 보람, 점프는 2만큼의 새로운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빵빵한(?) 참여가 가능할까요?
아, 이런 좋은 캠페인은 빨리 홍보를 시작하시지 않고🙂 제가 기발한 아이디어 쪽은 약해서요. 평소 가장 좋아하는 니체의 말을 소개할게요. <평등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미 높이 있는 사람을 낮출 것인가, 아니면 낮은 쪽을 높일 것인가의 질문에서, 니체는 강제로 평등을 낮추는 게 아니고, 낮은 쪽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같이 고민하자고 했습니다. 이번 1:1 모금 캠페인이 낮은 쪽을 높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타인을 향한 마음은 가깝고 누군가에겐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내 일이 아니니 그냥 몰라도 되는 것으로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낮은 쪽을 높이자는 어려운 숙제를 꺼내셨는데, 어떻게 하면 타인을 돕는 일과 가까울 수 있을까요?
언젠가 휴먼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만난 씨돌 어른의 말을 기억합니다. 제작진은 생의 마지막 투병 중인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자신이 아닌 남을 돕는 희생의 삶을 살았냐고 묻습니다. 병환으로 말하기 힘든 씨돌 어른이 메모지에 그 대답을 적었습니다. 그 답은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 유대현님은 이 마지막 문장을 남기고 예정된 사업 미팅에 참여하기 위해 급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점프레터 편집부에 아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씨돌 어른을 만난 방송은 SBS 스페셜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입니다. 씨돌 어른의 마지막 대답은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퇴근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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