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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요"

By 2015년 9월 30일 No Comments

[인터뷰] ‘응사’ 세대의 새로운 도전, 사단법인 ‘점프’

▲ 서울 성수동에 있는 ‘점프’ 사무국 직원들.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의헌 대표. ⓒ점프

‘가난한 아이들은 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나.’
‘왜 명문대학 신입생은 대부분 부유층 자제로 채워지는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4학년이던 웬디 콥은 그저 한숨만 쉬고 싶지 않았다. 실현 가능한 해법을 원했다. 고민 끝에 건진 아이디어로 졸업 논문을 썼다. 그때가 1989년이다.

‘대학을 갓 마친 젊은이 가운데서 지원자를 받는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추려낸 이들에게 집중적인 훈련을 시킨다.
이들을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있는 학교로 보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다.’

대략 이런 아이디어인데, 주변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재원 마련은 가능하겠나, 지원자가 얼마나 되겠나.’

‘티치 포 아메리카’의 성공
돈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웬디 콥의 구상에 호응하는 기업이 꽤 있었다. 모건 스탠리 등 대기업이 자금과 사무실, 자동차 등을 지원했다. 대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역시 성공적이었다.

웬디 콥이 1990년 설립한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TFA)’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첫 직장’으로 꼽힌다. 지난 2007년 <비즈니스위크>가 미국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장 순위를 조사한 결과에서, 10위를 기록했다. 평균 경쟁률은 10대 1 수준이다. 하버드, 예일 등 유명 대학 출신 지원자도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합격한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5주간 훈련받은 뒤, 2년 간 빈민 지역에서 교사로 활동한다. 미국 대기업들이 이런 경험을 높게 쳐준다고 한다.

결국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불과한 건가.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티치 포 아메리카’ 경험을 계기로, 교육을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꽤 있다. 한국 언론에 크게 소개된 미셸 리 전 워싱턴DC 교육감이 이런 경우다. 또 교육과 다른 진로를 택한다고 해도, 젊은 시절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부대낀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장학샘’과 아이들, 그리고 멘토단
심각한 교육 불평등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난하지만 총명한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 취급을 받는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적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전체 출생아 100명 가운데 약 4명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등학교 진학률은 30%대다. 중학교 진학률은 40%, 초등학교 진학률은 60%대다.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는 탄식이 나오는 한편에선, 기초교육조차 못 받고 방치된 아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판 ‘티치 포 아메리카’ 역시 나올 법하다. 실제로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의헌 사단법인 ‘점프’ 대표 역시 ‘티치 포 아메리카’에서 영감을 받았다. 청소년에게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을 균형 잡힌 인재로 길러낸다는 목표를 지닌 단체다. ‘점프’의 활동은 크게 세 축으로 이뤄진다.

우선 대학생 자원봉사자인 ‘장학샘’이 있다. 장학생과 선생님(샘)의 합성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서울장학재단이 후원하는 장학생이면서,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과 만나는 아이들이 있다. 주로 저소득층 및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나머지 한 축은 전문직 멘토단이다. 다양한 직군의 사회인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아이들에겐 역할 모델이 된다. 대학생인 ‘장학샘’과는 1대 1 멘토 관계를 맺는다.

‘장학샘’으로 뽑히면, 주당 8시간씩 1년 간 활동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만만치 않은 시간을 쏟는 셈인데, 지원자는 넘쳐난다. 장학금, 사회인 멘토와의 만남 등 인센티브 때문만은 아니다. ‘의미 있는 경험’에 목말라하는 대학생이 많다.

▲ 현대차 그룹 및 서울장학재단이 후원하는 ‘H-JUMP SCHOOL’에 참가한 대학생들. ⓒ점프

‘내가 바로 소수자구나’
이의헌 대표가 ‘점프’를 창립한 건 지난 2011년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점프 활동을 구상했다. 졸업과 함께 귀국해서 ‘점프’를 세웠다.

 “말 그대로 응사(드라마 <응답하라, 1994>) 세대죠.”

지난 21일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가 한 자기 소개다. 실제로 그는 1994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회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집안도 유복했다. 당시 유행하던 ‘신세대’의 전형. 대학을 마칠 무렵 언론사 취업을 준비했다. 여러 군데 원서를 냈는데, <미주 한국일보> 기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미국에서 기자 노릇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지명도가 낮은 매체 기자가 서툰 영어로 유력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돌아올 때면, 마음이 늘 어수선했다.

‘내가 바로 소수자구나.’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땐 공감하지 못했던 정서였다. 자연스레 비주류,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갔다. 탈북자 문제를 종종 취재한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기자 생활은 곧 한계에 부딪혔고, 미국 생활에도 지쳐갔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자 노릇 대신, 더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기구에 들어가서 탈북자 문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에 지원한 건 그래서였다. 합격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진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국제기구에 대한 매력이 시들해졌다. 대신, 대학원에서 마음 맞는 유학생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과 한국으로 돌아가서 할 일을 구상했다. ‘티치 포 아메리카’ 모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소수자, 약자가 겪는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는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에는 대학원 공부가 곧 ‘점프’ 설립 준비 과정이었다. 관련 자료를 찾고 연구하며 계획을 다듬었다. 이 점 역시 ‘티치 포 아메리카’ 설립자 웬디 콥과 닮았다. 웬디 콥 역시 대학 공부가 곧 ‘티치 포 아메리카’ 설립 준비 과정이었다. 그 역시 졸업과 동시에 ‘티치 포 아메리카’를 만들었다.

▲ 서울 성수동에 있는 ‘점프’ 사무국 직원들.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의헌 대표. ⓒ점프

“애인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요”
귀국해서 ‘점프’를 세우자마자, 몇몇 언론이 취재를 요청했다. ‘하버드 출신이 좋은 일 한다’라는 식의 접근이었다. 모조리 거절했다. 하지만 ‘점프’ 설립 5년째인 지금은 다르다. ‘하버드 간판’ 말고도 보여줄 게 많다.

‘장학샘’들은 일주일에 최소 여덟 시간을 아이들과 보냅니다. 전에는 최소 열여섯 시간이었어요. 아이들과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밥 먹는 시간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애인과 매주 여덟 시간씩 보내게 될까요. 바쁜 젊은이들이 가족과 매주 여덟 시간씩 대화할까요.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장학샘’들의 일상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한 거죠!

‘점프’ 활동은 아이들뿐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중요한 배움의 기회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와 함께 밥 먹고 공부한 경험, 학창 시절 잘 어울리지 않았던 가난한 아이들과 형제처럼 지낸 시간. ‘장학샘’으로 일 년을 보내고 나면, 크건 작건 누구나 변화를 겪는다. 이의헌 대표 역시 대학생들의 변화에서 종종 보람을 느낀다.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젊은이들이 훗날 사회의 중추로 성장한다면,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는 나은 곳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점프’ 활동이 딱히 새로운 건 아니다. 예전에는 철거촌 및 빈민 지역에서 공부방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철거촌이 사라지면서 대부분 지역아동센터로 바뀌었다. 공단 지역에선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야학도 많았다. 크게 보면, ‘점프’와 비슷한 활동이다. 이런 활동에는 종종 따라붙는 비판이 있다.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선, 한계가 분명하지 않느냐’라는 것. 가난한 아이들의 시험 점수 몇 점 올리는 것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 이의헌 대표 역시 선선히 인정했다. 교육 불평등 뒤엔 더욱 견고한 사회 불평등이 있다. ‘점프’ 활동으로 그걸 바꾸기란 무리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다. 대학생 ‘장학샘’과 보낸 시간 속에서 작게나마 꿈을 키울 수 있었던 아이가 있다면, 이런 경험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했던 청년이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아울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누군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한다. 미국 생활을 통해 이민자가 겪는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던 이 대표에게는 더욱 절박한 일이다.

“교육복지, 하드웨어는 있지만…”
지난해에는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일을 했다. 경기도교육청이 먼저 요청했다. 올해 ‘고3’이 되는 그 학생들을 위해 ‘장학샘’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점프’ 활동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는 기업의 후원도 한몫했다. 이 점 역시 ‘티치 포 아메리카’와 닮은 점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점프’에 다양한 지원을 했다.

‘점프’ 활동은 그림이 안 돼요. 비유하자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일이거든요. 하드웨어는 이미 갖춰져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아동센터를 포함한 교육복지 시설이 마련돼 있죠. 하지만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는 않아요. ‘점프’ 활동은 이런 장소를 활용합니다.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하는 일이 아닌 거죠. 그래서 사진 찍을 일이 별로 없는데도 후원하는 기업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 ‘H-JUMP SCHOOL’ 활동 참가자들. ⓒ점프

성현석 기자
>> 기사 원문 링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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