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Jump, 점프의 진심담은 이야기, 사람을 만납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3년)에는 두 상반된 아빠가 나옵니다. 쉽게 구분하면 ‘바쁜 아빠와 ‘안 바쁜 아빠’라고 할까요. 안 바빠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놀아주는 아빠가 반대편 아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나요?’. 바쁜 아빠는 뭔가 예민합니다. ‘회사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안 바쁜 아빠에겐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나 봅니다.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건데요’. 이만큼 간결하고 철학적인(?) 대사라니. 사실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나요? 삶의 어디에서 바쁠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마음이 다를 뿐이죠. 그렇게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바쁜 사업가의 삶 반대편에서 가족의 시간을 너무나 부지런히 챙겼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작별은 예고가 없어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유산은 일상의 말들과 행동으로 남았습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한때는 가족의 시간을 챙기는 일이 아버지 혼자의 몫이라 여겼는데, 돌아보면 모두의 삶을 챙기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자기 몸을 챙기지 않으면 마음이 건강할 수 없다는 일상의 말은 유언처럼 남았습니다. 한 번도 공부가 우선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셨답니다. 대신 ‘내게 주어진 삶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야 한다’고 응원하셨습니다. 그 생전의 말들이 다음 세대에게 소중하고 든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의 묘비명에는 이런 글을 적었다고 했습니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지금 소개한 아버지는 이운규 전 SH 건설 대표입니다. 6.25 전쟁을 겪은 세대로 고난 속에 학업을 이었고, 자수성가를 이뤘습니다. 두 아들(SH건설 이종훈 대표, 혁신 의료 기업 ‘스키아’ 이종명 대표)이 생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유산기부’를 실천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비상장 주식의 상당 부분을 점프에 기부했습니다. 자식은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프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유산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와 여동생, 온 가족이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다음 세대를 응원하는 일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이런 마음을 갖는 일 역시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의 하나니까요.
세계기부지수(영국의 자선지원재단이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나라별 기부 관련 조사. 조사 항목은 크게 3가지. 자선재단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는지이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세계기부지수 순위는 57위입니다. 2023년 79위, 2022년 88위. 한국의 기부 참여율은 감소 추세라고 합니다. 기부의 동기는 동정심 > 사회적 책임감 > 개인 행복감 등의 순서인데, 동정심과 사회적 책임감이 1, 2위를 다툽니다. 유산기부는 어떨까요? 국내 총 기부금 중 유산기부 비율은 1% 정도로 미미합니다. 여전히 재산에 대한 사유화 및 상속의 개념이 앞서면서, 사회 환원의 비율은 활발하지 않습니다. 이번 유산기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12월 17일 점프 그리드 사무실에서 이종훈(56), 이종명(50) 형제를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을 듣는 자리인데, 의외로 두 분은 점프가 궁금하다며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하는 분들이 다들 젊네요. 직원이 몇 분이세요?’, ‘교육봉사는 직접 현장에서 진행하나요?’, ‘아이들한테 좋은 선생님이 필요할 텐데, 장학샘들은 어떻게 선발하나요?’ ‘점프가 응원하는 청소년은 어떤 친구들인가요?’… 여러 질문을 던지는 형제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우선, 그의 아버지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이 많으셨겠구나, 그런 짐작을 했습니다. 또 점프를 들여다보고 알아가려는 그 모습에서, 서로 오랫동안 좋은 우정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종훈 대표와 아버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종훈 대표가 아버지와 찍은 여행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요. 이 사진은 10년 전 마카오 여행 때 찍은 사진입니다. 언제나 자랑스럽고 늘 친구 같은 아버지셨어요.”
소중한 그 마음 기억하며… 아버지의 유산기부
좌측부터 인터뷰에 참여한 이종명, 이종훈 형제
어떻게 유산기부를 하게 되셨나요? 여러 후원처가 있었을 텐데, 점프를 생각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종훈 대표) 올해 4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어요. 그날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날따라 아버지께서 컨디션이 안 좋다고, 먼저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버지 유산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따르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늘 자식들(다음 세대)이 자기 삶에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어디에 기부할까? 찾아봤어요. 우리나라에 좋은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다음 세대(청소년)와 함께하는 점프를 알게 된 거죠.
(이종명 대표) 아버지가 대학 시절 ‘심우회’라는 동아리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셨어요. ‘심우(心友)는 마음의 벗이라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마음의 벗‘이 되어줄 수 있다면, 참 의미 있잖아요. 돌아보니, 아버지께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 그것이었어요. 아버지의 유산을 사회에 잘 쓰고 싶었습니다.
흔히 유산을 말하면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는데, ’마음의 벗‘을 말씀하신 것이 흥미롭습니다. 점프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응원처럼 들려서 더 감사합니다. ’늘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말을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종명 대표) 아버지와 너무 많은 추억(시간)이 있는데, 이 일이 기억나요. 제가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재수를 준비하면서 심란할 때가 있었어요. ’청춘 리셋‘을 고민하며 재수학원에 등록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한 스키장을 장기로 예약하셨다는 거예요. 인생은 길다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뭐든 하는 거라고, 건강이 먼저라면서요. 어찌 보면 시트콤 같은 일인데, 아들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가 왜 그러시나, 그러다 뒤늦게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긴 인생에서 지치지 않는 법을 알려주셨다는 걸요.
(이종훈 대표) 아버지는 늘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는 시간을 아끼셨어요. 누구보다 부지런한 인생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죠. 가족이 스키장에 가면 첫 번째 리프트를 타야 한다면서, 그 새벽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어요
그런 삶의 부지런함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시가 ’청춘‘이었어요. ’청춘‘이 아버지 삶을 이해하는 가장 적절한 키워드 같아요.
*시 <청춘>은 사무엘 울만이 나이 78세에 쓴 시로 유명하다. 시는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는 말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평생 보여준 부지런함이 <청춘>의 싯구절과 닮았을 것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라는 시는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그 시를 알고 있었다. 지난 삶의 어느 때 ’청춘‘이란 시를 읽고 언제나 청춘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가슴 부풀었던 적이 있지만, 삶은 마음만큼 늘 푸르지는 않았다. 때로 두려웠고, 안이했고, 비탄은 희망보다 먼저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원래의 삶이 그렇다면 거기 지지 않겠다고, 평생 저항하며 살아온 어른이 계셨다.
평소 아버지께서 워낙 젊게 사셔서 ’100세 인생‘은 거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든다섯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여든 넘어서도 겨울엔 스키, 여름엔 수상스키 등 여러 운동을 즐기셨거든요. 아버지의 그런 활동들이 ’청춘‘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일상의 시간과 말들을 통해 ’유언‘(아버지가 남긴 것)을 생각하는 거죠. 아버지께서 평생을 걸쳐 우리에게 남기신 건 ’청춘의 마인드‘(삶을 버티는 정신력)였어요.
점프가 다음 세대를 응원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은 작은 응원이지만 내일은 더 큰 의미 있는 일들로 이어지겠지, 그 마음이 크거든요. 방금 말씀하신 아버지의 유산을 들으면서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에 대해 더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종훈 대표) 아버지가 겪은 세상과 자식들이 만난 삶은 달랐어요. 아버지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당시 초등학생이었어요. ’생존‘의 삶에서 다방을 전전하며 껌과 담배를 팔았고, 어렵게 공부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영양실조로 등이 굽는 병에 걸렸답니다. 청소년기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인생이 너무 답답해서, 그만 살 생각을 했던 날이 있었다고, 그때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버텼다고 하셨어요. 가끔 그 인생 얘기를 하시면서, 지금 여기 있는 삶은 내게 주어진 너무 소중한 두 번째 인생이라고, 덤 같은 인생을 살고 있으니,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애절한 시간 안에 우리와 보낸 시간이 포함된 거였죠. 덕분에 우리도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아버지 묘비명에 이런 문구를 담았어요.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종명 대표) 제가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창업에 뛰어들었어요. 훌쩍 창업 30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살면서, 사업하면서, 굴곡이 없지 않았어요. 그렇게 삶이 힘들고 답답할 때면, 운동하면서 정신을 붙잡았어요. 그 운동은 지친 삶을 버티게 하는 명상 같은 역할을 해줬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운동은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안 하시면서, 함께 운동하자고 권하셨던 이유를, 흘러가는 삶 안에서 깨우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장례식장은 그 사람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말이 있어요. 빈소에서 너무 서글프게 우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아버지 참 잘 사셨네‘, 그 생각을 했어요.
소중한 기억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문득 떠오른다고 하잖아요. 아버지의 존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요?
(이종훈 대표) 남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계속 생각하게 되죠. 어느 식당에 가서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아, 이 음식 아버지가 좋아하신 메뉴였는데… 그럴 때처럼요. 몇 년만 더 계셨어도 서로 소중한 것들을 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마음이 들면 여전히 허전해요. 여전히 아버지의 빈 자리가 크지만,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채우고 있어요. 평생 자식,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챙기셨어요. 자식들이 결혼한 후에도 주말이면 대가족이 모였습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어요. 아버지의 이름이 있어서, 그 어떤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게 너무 특별하고 감사하죠. 그 부지런한 시간을 따라 저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곁에 있어 주려고 하는데, 그래도 아버지의 시간보다는 부족하죠.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에게 일정한 마음의 빚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또 다음 세대를 위한 응원을 해야 한다고, 삶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산기부는 가족 전체가 동의해야 가능한 일인데요. 말씀하신 ’서로 함께했던 충분한 시간‘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결정됐을 것이란 짐작을 해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점프에 기부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공통 답변) 가족이 함께 보냈던 시간을 통해 서로 충분한 신뢰가 있으니까요. 행복은 좋은 사람들이 같이 있는 시간에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가치 있는 시간에 아버지의 유산이 쓰이게 되어 우리 가족에겐 더 소중한 일이 됐습니다.
행복은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사이에 있다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이번 기부금이 어떤 활동에 쓰이길 바라시나요?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말도 듣고 싶습니다.
(이종명 대표) 점프 장학샘 활동을 멘토링이라고 하잖아요. 멘토링이 사람을 응원하는 일이라면, 그 응원을 통해 아이들이 삶에서 자신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회가 아이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나, 그 걱정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가 있다면, 자기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제 이야기에 공감하실 텐데요. 아들이 입시에 실패하고 자기 미래를 고민할 때가 생각나요. 자기는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짠해요. 학부모로서 화도 많이 났어요. 시험이란 게 어떻게든 틀리라고 문제를 베베 꼬아 놓잖아요.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고민 했어요. ’지금은 답답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또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서 네 삶이 주눅 들지 않으면 좋겠다. 분명 네가 좋아하는 일이 있을 거다. 지금 답답해서 흘리는 눈물만큼, 앞으로 너의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요.
(이종훈 대표) 점프가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요. 하던 대로, 필요한 일에 잘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듯, 자식은 아버지와 나눈 좋은 시간과 경험을 평생 간직하잖아요. 그처럼, 다음 세대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을 간직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중간에 스쳐 가듯 던진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일의 태도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남긴 ’일‘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는데, 뜻밖에 점프의 마음과 너무 닮은 답을 들려줘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 따뜻한 말을 전하면서, 12월 점프레터를 마칩니다.
(이종훈 대표) 건설업이 만만치 않은 일이거든요. 올해 어렵게 완수한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자재비는 계속 오르고 필요한 일손(엔지니어)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고, 정말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마쳤어요. 이상한 일이죠? 삶이 힘들 때 아버지의 모습이 더 아른거려요. 일이란 게 이렇게 고생인데, 어떻게 그렇게 묵묵하게 일하셨을까. 제가 이런 하소연을 하면, 이 말씀을 하셨을 것 같아요. ’일에 요령이 어디 있겠니? 시작을 했으면 끝날 때까지 책임을 다하는 거지.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이종명 대표) 지금 하는 사업(스키아)이 AR 기술을 활용한 혁신 의료 분야거든요. 사실 이 사업을 시작한 게 대학교 시절 알고 지낸 의사 후배의 아이디어로 출발했어요. 이런 기술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사업이란 게 돈만 벌려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마음이면 결국 망해요. 이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런 깊은 고민과 이타심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어요. 형이 점프를 말했을 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줍니다. 타인을 선하게 대하면 많은 것을 돌려받는다고, 그 따뜻한 경험이 네 삶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거라고요. 그러니 항상 주변을 생각하고, 삶에 감사하며 살자고 다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