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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오브점프

오랜 외로움, 그 반대말을 찾아서 : 헬레나 청소년 인터뷰

By 2024년 2월 27일4월 23rd, 2024No Comments

Inside Jump, 점프의 진심담은 이야기, 사람을 만납니다.

 


 

 

얀추 헬레나, 고향은 가나.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현재 가족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신앙의 길을 따라 동남아에, 어머니와 두 동생은 외할머니가 계신 벨기에에 있습니다. 헬레나가 고 2 무렵, 어머니가 함께 벨기에로 가자고 했을 때, 헬레나는 며칠 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은 뒤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 너무 힘들 거 같아요. 제게 가장 익숙한 한국에서 제 미래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작별하고 홀로 남아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고 3이라는 이름이 갖는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교차했을 그 시기를 어떻게 혼자 버텼을까요. 다행히 헬레나의 곁에는 마음 챙겨주는 이웃이 있었다고, H-점프스쿨 장학샘 언니가 가족처럼 입시준비를 챙겨줬다고, 그 어떤 것보다 ‘내 삶의 기도’를 매일 했다고 했습니다.

헬레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경기글로벌센터에 다니면서 H-점프스쿨 장학샘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점프 ‘너를 응원해! 청소년 장학금’을 3회 받았는데, 그 과정에는 이주배경 청소년의 걱정과 현실이 담겼습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목회자로 정식 직업을 얻지 못해 생계가 어렵다는 것, 장녀로서 부모의 용돈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자신은 필요한 시험 교재를 구입하고 남은 장학금은 두 동생의 용돈을 주겠다고 신청서에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헬레나는 3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입생이 됩니다. 입학식 날 타지에 흩어진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2월 중순, 점프 성수동 사무실에서 예쁜 봄을 맞이한 헬레나를 만났습니다.

멘티 헬레나의 새로운 시즌

안녕하세요, 입학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느라 설레겠어요.

신입생 OT에 참여했는데 좀 재미없었어요🤣. 너무 진지한 얘기들이 많아요. 학교에서 제공하는 대학생활 정보들, 학교의 규칙들을 말하는 자리라 그렇겠죠.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좋았어요. 대부분 외국 친구들인데요. 서로 나이 차이는 있지만 고향 이야기, 한국에서 좋았던 경험들을 나눴어요. 그나저나 학비가 비싸서 앞으로도 걱정이네요.

 

 

음, 솔직한 이야기네요. 캠퍼스에 대한 기대, 그런 것들은 아직 말 안하셨어요?😄

초반에 고생을 많이 해서요ㅎㅎ 제가 이주배경이라 준비해야할 입학 서류들이 있어서 그거 챙기느라 바빴어요. 이제 인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거예요. 학교 기숙사가 한참 걸어야 하는 오르막 끝에 있어요. 방 배정 받은 날 캐리어를 끌고 언덕길 오르느라 숨을 헉헉 댔어요. 그날 기숙사에서 도서관까지 왕복해 봤는데 꽤 먼 것 같아요^^. 대학생 되면, 예쁜 연애를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를 생각하며 설레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거든요.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심리학과하고 고민하긴 했어요. 심리학을 배워 저 같은 다문화가정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주배경자들은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관계적인 면에서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어요. 아직 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사회는 아니잖아요. 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일하다 다쳐도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고, 비자 이슈로 불안할 수 있고, 여전히 차별은 존재해요. 제게도 차별이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서, 다음세대에겐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남을 돕고 싶은 마음, 제가 생각하는 미래를 더 넓게 펼치고 싶어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어요. 사회에서 작고 상처받은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외국인 전형으로 들어가신 거죠. 후배들에게 알려줄 입시 비법(?) 같은 게 있을까요?

외국인 전형 지원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해당 조건을 잘 지켜야 됩니다. 저는 생기부(생활기록부)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말하기 대회, 봉사활동 등 학교에서 인정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했어요. 저 혼자 준비했다면 원하는 만큼 안 됐을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께 진로 상담을 하면서 저의 관심분야에 대한 책, 정보를 얻고 글쓰기 수행평가를 꾸준히 했습니다. 외국인 차별의 문제, 전쟁은 왜 일어나는지, 독도 분쟁에 대한 한국 청소년의 관점 등 다른 생각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죠. H 점프스쿨 멘토 언니(은지샘)는 정말 자기 일처럼 고 3인 저와 함께 달려주었어요. 샘도 바쁠 텐데 마치 저의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요. 그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가 배우고 준비한 모든 것들이 내 삶과 생각을 진실 되게 전달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많은 축하를 받았겠네요. 특히 타향에서 걱정하고 응원했을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었겠어요.

가족 모두 너무 기뻐해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집안의 장손이 큰일을 했다고 정말 행복해 하셨어요. 동생들을 비롯해서 집안에 길을 열어줬다면서요. 그런데 축하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어요. 입학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하지?라는 고민이 컸거든요. 다행히 친척들과 주변 지인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셨어요. 아버지께 등록금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기다리렴, 너의 마음은 응답받을 거야”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좋은 마음들이 모여 길을 열어준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헬레나의 기도는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이뤄졌습니다. 납부 기한 2일을 남기고 등록금을 마련했거든요.
그동안 자기가 안 쓰고 모아둔 저금은 기숙사비에 보탰다고 했습니다. 헬레나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지만, 그만큼 마음 졸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내 고된 삶을 응원하던 매일의 기도

평소 삶의 기도를 많이 하나요?

기도라는 걸 안 이후부터 내 삶을 위해 기도하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가족의 경제적 고민, 건강을 위한 기도를 많이 했어요. 힘든 상황에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삶을 응원하는 의식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바로 앞의 현실을 원망한 적은 없나요?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주느냐 같은.

물론입니다. 우리 가족은 기도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지 원망하고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현실에서 저는 짜증내고 울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삶의 어려운 시험은 동생들보다는 내게 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냐면 어린 동생들보다는 내가 더 이겨낼 힘이 있을 것 같아서요. 여전히 힘들고 지칠 때가 있지만 나의 고통을 겪어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겪은 고생이 앞으로의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할 거라고, 만약 내가 쉬운 길로만 왔으면 단단한 마음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내가 아팠던 시간보다 더 말 못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아니까요.

 

 

흔들리고 있는 나를 붙드는 건 한편으로 자기와의 대화라는 것 같네요.

네. 친구에게 말하기는 무겁고, 부모님은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고, 선생님은 모든 나를 이해할 수 없고요. 속마음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저한텐 기도였어요. 제가 늘 하던 기도처럼, 당신의 삶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지금 너무 따뜻한 응원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한 ‘삶의 기도’가 누군가에게 꼭 다가가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헬레나에게 가족에 대한 정의를 묻고 싶었어요. 매일 한 곳에서 모두 모여 사는 환경이 있다면, 누군가의 가족은 헬레나처럼 흩어져서 서로에게 먼 안부를 묻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혈연을 뒤로 한다면, 제 가족은 ‘지금, 여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에 와서 머문 집 주변에 공동체처럼 저를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혼자인 제가 밥을 거를까봐 챙겨주고, 밥을 걸렀다고 하면 혼을 냅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부모님이 못 오셨지만, 주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제가 힘들 때 곁을 지켜주고, 좋은 일이 있으면 활짝 웃어주는 분들이 또 하나의 ‘가족’ 같습니다.

 

 

주변에 넓은 의미의 가족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 동생들의 빈자리를 느낄 때가 있겠죠?

그렇죠, 그건 여전히 외롭습니다. 가족은 떨어져 있을 때 더 특별한 것 같아요. 한국에 같이 살 때는 엄마가 자꾸 집안일을 시켜 짜증내고, 동생들이 내 공간을 침범하면 화를 냈는데, 그런 가족들이 참 보고 싶으니까요. 엄마 계실 때는 반찬 투정을 많이 했는데 혼자 지내면서 엄마의 손맛이 너무 그리워요.

 

 

고 2때 엄마와 동생들이 외할머니가 계신 벨기에로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의 작별에는 여러 사정과 어른들의 선택이 있었을 텐데요. 왜 같이 가지 않았나요?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정치외교학과라는 꿈을 만났는데 그걸 정리해도 될까? 내게 소중해진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걱정됐어요. 가장 오래 머문 나라가 한국이고, 익숙해진 곳이고, 나의 미래를 생각할 때였거든요. 가족들은 내가 같이 갈 줄 알았을 거예요. 엄마가 제 의견을 물었을 때, 다시 시작하는 거 너무 힘들 거 같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때 진짜 깊게 고민했고, 후회한 날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장학샘 언니와 별 같은 존재들

너를응원해 성장 장학금은 잘 사용했나요?

진짜 큰 도움이 됐어요. 너를응원해 이름처럼 누군가의 삶에는 정말 큰 응원이에요. 입시 준비하며 수능 특강 교재를 구입하고, 동생들 필요한 것들 사주고, 아버지 용돈 걱정 덜어드렸어요. 장학금을 분기별로 받으니까 돈을 막 쓰지 않고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웠어요. 일부 장학금에서 모은 비용은 기숙사비에 보탰습니다. 그때 기록해둔 성장일기를 보면서 많은 걸 했구나, 새삼 기특하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면 저도 기부를 하려고요. 근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까, 장학금도 좀 올리면 어떨까요?😃.

 

 

헬레나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 데는 장학샘 언니들이 있어서라고 했어요.

중학교 2학년부터 경기글로벌센터에 다니면서 여러 샘들을 만났어요. 다들 고마운 분들인데, 소정, 은지샘을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과 고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샘들과 많이 나눴어요. 아, 이 샘들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구나. 서로의 마음이 닿아서 진심으로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요. 곁에서 나를 응원하고 바라봐주는 샘들에게 나도 잘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칭찬 받고 싶어서, 서로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샘들을 만나는 날은 내 삶에서 정말 기쁜 날들이었습니다.

 

 

또 어딘가에 응원이 필요한 작고 어린 또 다른 헬레나가 있을 텐데요.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점프 장학샘이 되는 건 어떤가요?

아, 은지샘이 신입생 때는 그냥 잘 놀라고 해서요😂. 2학년 때 신청해도 될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일인 것 같나요?

서로에게 별 같은 사이랄까요. 도시의 흐릿하고 숨 막히는 공간을 벗어나 시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반짝이잖아요. 어두운 밤하늘에 빛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 참 다정하네요. 남을 도와주겠다거나 타인을 응원하게 되는 선한 마음은 어디서 생기는 거 같나요?

제 경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빠의 친구들이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배신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과거의 일과 사람을 탓하지 않고 또 조용히 도와주시더라고요.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정말 무시할 거 같은데 말이죠. 아빠가 이런 말을 하셨어요. 그들도 과거를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과거 보다는 미래를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러면서 내가 타인을 도울 수 있을 때 복이 찾아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미래의 헬레나는 사람을 도와주는 자리에 있고 싶은데요. 제 삶에서 그걸 더 깊이 알깨워 주려고, 제 삶에서 외롭거나 힘든 일들을 만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요? 한편의 사회는 가진 게 없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걸 뺏어가니까요.

인생은 많이 힘들죠, 나랑 같은 사정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니까요. 그럴 때 나를 다독이는 말이 있습니다.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말자, 그들한테도 분명 고민 이 있을 거고, 그 사람이 되레 나를 질투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라고요. 힘들고 지친 길이지만 옆 말고 앞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꼭 긍정적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비를 맞았지만 내일은 따뜻한 이불 안에 있을 거고, 사막을 걷다 보면 오아시스를 만나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요.

 

 

헬레나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태어난 가나인가요, 살면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한국인가요, 어머니와 두 동생이 있는 곳이 마음의 고향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경계인일 수 있을 텐데요.

음, 저는 여러 개의 고향이 있거나 혹은 고향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데 힘들지는 않아요. 누군가 힘들고 외로워서 다른 안식처를 찾는다고 하면, 저는 그런 곳이 없어서 더 기쁜 것 같아요. 힘들면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어디든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맛난 음식을 나눠먹고,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제게 고향은 다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어디든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곳이란 생각이 지금 문득 들었습니다.

 

 

오늘 너무 소중한 말들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 중 가장 가보고 싶은 시간은 어디인가요?

예전의 나라면 과거라고 했을 거예요. 과거의 나를 힘들게 하고 두려워서 하지 않은 것들을 바꾸고 싶었거든요. 미래도 재밌겠네요. 미래의 나를 만나 인생의 정답을 미리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제 과거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미래는 정답을 만나는 거라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금을 가장 좋아할래요. 현재의 제가 걷는 길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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